본문 바로가기

역사

역사기행 그곳 - 천년의 기억, 규슈

안녕하세요 양리입니다.

 

이번주는 역사저널 그날이 방송이 쉬었습니다. 대신 역사기행 그곳이라는 방송으로 최태성,이윤석씨가 일본을 역사여행을 떠나는 내용으로 방송이 되었습니다. 아래와 같이 확인 하시길 바랍니다.

 

 

 

 

 

 

 

 

 

 

 

 

후쿠오카 구시다신사에는 우리가 모르는 가슴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하카타역사관에는 '히젠도'라는 칼이 전시하고 있는데, 이 칼은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이라고 합니다. 칼의 주인이였던 도오 가쓰아키가 1908년 에 기증하였고 칼집에는 '한순간에 번개처럼 늙은 여우를 베었다'는 뜻의 일순전광자노호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날 방문했을때에는 히젠도를 앞으로도 공개할 생각이 없다는 한글로 적혀져있었는데, 그 이유는 한국의 혜문스님이 '히젠도환수위원회'를 발족하고 히젠도 환수 폐기 운동을 벌이고 있어 신사측에서는 공개를 하지 않고 있는것 같습니다. 한나라의 국모를 시해한 칼을 한 절에서 보관하고 있다는 것은 일반상식으로도 납득이 가지 않는 내용입니다.환수위원회는 일본정부에게 문제를 제기를 하고 있지만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 국내에서도 관심을 가져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명성황후를 일본이 왜 시해를 했는지는 을미사변이 왜 일어났는지 부터 알아야한다고 최태성 선생님이 설명을 해주는 내용입니다. 일딴 청일전쟁은 1894년 일본과 청나라가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전쟁을 벌이는데, 일본은 조선,만주,타이완등지에서 청나라군을 연파하고 1895년 4월 17일에 청국과 일본의 시모노세키를 조약을 맺습니다. 여기서 요동반도(랴유둥반도)를 두고 러시아,독일,프랑스(삼국간섭)가 청국에 반환하도록 일본에 압박을 합니다. 일본은 당시 3국열강들을 상대로 싸울 만한 전력이 없기때문에 요동반도를 청국의 넘겨주는데, 이 상황을 지켜본 명성황후는 일본이 러시아한테 힘을 못쓰는 것을 보고 러시아를 끌어들이지만 일본이 알아채고 명성홯후를 시해를 하게 됩니다.   

 

 

 

 

 

 

 

다음으로는 나고야로 이동을 합니다. 나고야는 연간 23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관광도시입니다.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나고야에서 28만에 병사를 모아서 조선으로 침공한 주둔지였기도 한데, 임진왜란을 일으킨 본거지 나고야성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축조하고 아홉번째 아들을 성주로 봉한 뒤 대영주의 거성을 중심으로 발달한 도시입니다.

 

 

 

 

 

 

사가현립 나고야성 박물관에는 거북선도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풍신수길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장군배도 나란히 전시되고 있는데, 박물관에 조선의 침략 설명을 '상처를 남겼다','피해를 미쳤고','침략전쟁이였다'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전에는 '진출'이라는 표현을 했다고 합니다.

 

 

 

 

 

 

 

 

 

일본 규슈로 이동해 가카라시마섬에 이동합니다. 이곳은 무령왕이 태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섬 해안가에 한글로 환영한다는 문구가 보이는데, 무령왕은 이곳 섬 한 동굴에서 태어 났다고 합니다.

 

 

 

 

 

 

 

백제의 무령왕이 이곳에 태어난 이유는 서기 462년 고구려의 장수왕이 백제를 침공합니다. 그때 당시 백제는 개로왕이 지배하고 있었는데, 개로왕의 동생 곤지에게 왜에 넘어가 구원을 요청하게 합니다. 곤지는 개로왕의 부인을 같이 동행을 하기 원했는데, 개로왕은 승낙을 합니다. 당시 배속에는 무령왕이 있었는데 왜 도착해 이곳 동굴에서 낳았다고 합니다. 당시 동굴 옆 우물도 있는데, 거기서 출산하자마자 싯었다고 얘기가 전해 옵니다.

 

 

 

 

 

 

 

오늘 방송에 마지막 구마모토현으로 이동하는데, 구마모토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입한 가토 기요마사가 구축한 구마모토 성을 중심으로 발전한 상업도시입니다. 당시 구마모토성을 축조할때 조선의 피로인을 동원해 구마모토 성을 쌓았다고 합니다. 구마모토성은 얼마전 지진때문에 많이 훼손되었는데 그래도 많이 부서지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구마모토 성을 쌓은 가토기요마사는 정유재란때 울산성에 포위되었던 기억때문에 구마모토 성을 미로가 많고 우물도 상당히 많이 만들었으며 식량도 풍부하게 설계했다고 합니다. 정유재란때 울산성에서는 말고기를 어쩔 수 없이 먹었는데 현재 구마모토에서는 말고기가 유명하다고 합니다.

 

해당 사진들은 본문에 이해를 돕기 위한 용도이며 모든권리는 해당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2016/10/25 - [역사] - 역사저널 그날 - 기황후

2016/10/18 - [역사] - 역사저널 그날 - 충선왕

2016/10/11 - [역사] - 역사저널 그날 -충렬왕과 몽골공주가 혼인하다.

2016/10/05 - [역사] - 역사저널 그날 - 삼별초

2016/09/27 - [역사] - 역사저널 그날-임진왜란

2016/09/21 - [역사] - 역사저널 그날 -거북선

2016/09/08 - [역사] - 역사저널 그날 - 김윤후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