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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사저널 그날 - 충선왕

안녕하세요 양리입니다.

 

 

 

 

 

 

고려시대의 충선왕은 우리나라 최초의 혼혈왕이였습니다. 외할버지는 원나라 황제 쿠발라이칸이였고 어머니는 쿠빌라이 칸의 딸 제국대장공주로서 이런 태생적인 이유때문에 삶이 평탄치만은 안았던거 같습니다.  

 

아버지 충렬왕과는 사이가 안좋았는데 자주사냥을 나가고 연회를 즐기는 방탕한 생활을 하는 아버지를 싫어했던 것이였습니다. 

 

더군다나 사냥을 나가게 되면 무비라는 충렬왕의 애첩이 있었는데 충선왕은 애첩"무비"가 눈에 가싯거리였습니다.

 

그러던중 1297년 5월 제국대장공주가 39살에 꽃다운 나이에 갑자기 사망을 하자 당시 원나라에 있던 충선왕은 제국대장공주에 죽음에 무관심한 아버지(충렬왕)을 보고 그 탓을 무비탓으로 돌려 무비와 그 일당들을 잡아 목을 베어 버렸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부자지간의 사이는 더욱 나빠졌습니다.

 

 

 

 

 

 

 

 

 

원나라에 사실상 반식민지였던 고려는 원나라가 마음에 안들면 왕위를 마음대로 바꿔버리는 폐단까지 일삼습니다.

 

충선왕도 그런 상황이였는데 충렬왕이 왕위를 충선왕에게 물려주고 충선왕은 원 세조의 손녀인 계국대장공주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어머니인 제국대장공주를 놔두고 향략을 즐긴 아버지를 싫어했지만 충선왕 그 역시 마찬가지로 계국대장공주를 놔두고 여러 후궁을 두게 됩니다.

 

충선왕은 여러부인가운데 조비를 가장 총애했고 계국대장공주를 멀리했습니다.

 

조비가 충선왕이 몽골공주를 사랑하지 못하도록 음모를 꾸민다는 소문이 돌게 됩니다.

 

소문에서 돌다가 드디어 사건하나가 발생하게 되는데 궁궐문에 조인규(조비아버지) 아내가 무당을 시켜 왕이 공주를 사랑하지 않도록 저주하게 했다는 글이 나붙기도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안 계국대장공주는 몽골에다가 이사실을 알리게 됩니다.

 

원나라에서는 조비를 원나라로 압송하고 조인규등의 재산을 몰수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즉위 7개월만에 충선왕이 폐위대고 충렬왕이 복위됐습니다.

 

 

 

 

 

 

 

충선왕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빠른 개혁을 단행합니다.

 

인사제도부터 뜯어 고쳤는데 자신의 장인인 조인규를 시중으로 삼는 등 새 인물을 채워 아버지 충렬왕 대의 측근정치를 개혁하고자 합니다.

 

빠른 개혁에는 항상 부작용이 생기게 됩니다.

 

기존 기득권층들의 반발을 불러오고 그 기득권층중에서는 원나라와 끈이 닿아 있는 경우도 많

 

아 위기의식을 느낀 사람들은 왕을 몰아내려고 작정하고 충선왕의 약점을 공격했습니다.

 

 

 

 

 

 

 

 

 

 

 

 

충선왕은 폐위되고 10년만에 복위를 하게 됩니다.  

 

충선왕은 원나라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귀국후 왕위에 오른 후 다시 원나라로 들어가 1313년 3

 

월까지 5년동안 단 한 차례도 고려에 오지 않고 전지만을 보내는 식으로 고려를 다스렸습니다.

 

아버지의 측근정치를 싫어했던 충선왕 역시 측근들을 중심으로 정치를 하였습니다.

 

 

 

 

 

 

 

 

충선왕은 5년동안 한번도 고려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1312년 원나라 황실은 충선왕에게 고려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때 당시에 충선왕은 심양왕과 고려국왕 두개를 같이 겸하고 있었는데 두개의 왕을

 

겸직할 수 없다는게 원황실의 이유였습니다.

 

충선왕은 결국 아들 충숙왕에게 고려왕을 물려주고 원나라에 머무는 것을 택합니다.

 

 

 

해당 사진들은 본문에 이해를 돕기 위한 용도이며 모든권리는 해당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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