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양리입니다
저번주에는 역사저널 그날-김윤후편이 방송되었습니다 승려 김윤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김윤후는 고종때 사람이다 일찍이 승려가 되어 백현원에서 살았는데 ,몽고군이 쳐들어오자 김윤후는 처인성으로 피난 갔다가 몽고 원수 살리타이(사르탁)가 와서 성을 공격하자 김윤후가 그를 활로 쏘아 죽였다. 왕이 그 공을 가상히 여겨 상장군으로 임명하였으나 김윤후는 공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면서 "전투할 때 나는 활이나 화살을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어찌 함부로 무거운 상을 받겠는가?"하고 끝까지 사양하자 섭랑장으로 바꿔 임명하였다
뒤에 충주산성방호별감으로 있을때 몽고군이 쳐들어 와 충주성을 70여일 동안 포위하자 비축해 둔 군량이 바닥이 나버렸다 김윤후가 군사들에게 "만약 힘을 다해 싸워 준다면 귀천을 불문하고 모두 관작을 줄 것이니 너희들은 나를 믿으라"고 설득한 뒤 관노문서를 가져다 불살라 버리고 노획한 마소를 나누어 주었다 이에 사람들이 모두 죽음을 무릎쓰고 적에게 돌진하니 몽고군은 조금씩 기세가 꺽여 더 이상 남쪽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 공으로 감문위 상장군으로 임명되었고, 기타 전투에 공이 있는 사람은 관노에 이르기까지 모두 관작을 차등있게 내려주었다
홍복원은 고려 후기의 반역자로서 1231년 인주의 신기도령으로 있으면서 몽고가 침략해 오자 편민을 이끌고 투항하였다 그 뒤 고려군민만호에 제수되었고 ,몽고의 길잡이가 되어 고려를 침고하는데 앞장 섰다 몽고가 북계의 40여성을 함락시킨 뒤에는 이 곳을 진수하였다 그리고 고려의 항복을 종용하는 사신으로 파견되었다.1232년 고려의 강화천도에 대한 보복으로 살리타가 침공해 오자 북계를 근거지로 해서 협력하였다 살리타가 처인성에서 사살당하고 몽고군이 철수했는데도 그는 몽고군의 구원을 기다리며 북계를 진수하였다 다음 해에는 서경낭장의 직함으로 필현보와 함께 선유사정의등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다 곧 북계병마사 민희에게 토벌되어 필현보가 죽임을 당하자 몽고로 도망해 랴오양,심양등지에 거처하였다 이 때부터 몽고로부터 관령귀부고려군민장관에 임명되었다 거기서 전쟁중에 몽고에 투항했거나 유망해간 고려인들을 통치하였다. 또한,이들은 이끌고 몽고의 고려 침략에 합세해 1235년,1245년,1253년,1254년,1258년 다섯 차례에 걸쳐 고려를 공격했다
김윤후가 사르탁을 사살한 무기는 이라는 주제로 방송에서 나오고 있다 활로 쏘았을때에는 장전은 빠르지만 사거리가 작아 뒤에 있는 장군을 저격하기에는 부족했을것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다
또한 예시로 쇠뇌라는 무기로 시범을 보이고 있는데 쇠뇌는 사거리가 길고 위력이 더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고려중앙정부 일부군인들만 소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방성에서 갖고 있기에는 신빈성이 부족하다는 견해이다 사르탁이 확실히 활에 맞아 죽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해당 사진들은 본문에 이해를 돕기 위한 용도이며 모든권리는 해당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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