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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사저널 그날 -충렬왕과 몽골공주가 혼인하다.

안녕하세요 양리입니다.

 

 

삼별초가 일어나고 고려조정은 더욱 피폐해지고 백성들에 고통은 더 해 갑니다.

 

이에 원종은 몽골과 국제결혼을 주도하게 됩니다.

 

역사저널 그날에서 한번 아래와 같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려의 왕권에 불안하게 느낀 원종은 아들(충렬왕)을 몽골의 공주와 결혼을 시도하게 됩니다.

 

몽골왕(쿠빌라이칸)은 어렵게? 자기딸(제국대장공주)을 충렬왕(태자 왕심)을 결혼을

 

허락하게 됩니다.

 

결혼을 혼인했을때 나이는 충렬왕이 39세 제국대장공주는 17세였다고 합니다.

 

나이차도 많았지만 충렬왕은 이미 혼인을 하였고 장성한 자식도 있었지만 원에 제국대장공주

 

는 결혼하자마자 서열 1위로 왕비대우를 합니다.

 

 

 

 

 

 

원종이 아들 충령왕에 결혼을 주도했지만 먼저 혼담을 시작한 것은 몽골이였다고 합니다.

 

몽골(원나라)사신이 찾아와 고려왕 원종을 만나서 상석에 앉히려 했지만 사신이 황제의 딸과

 

혼인약속을 했으니 대등하게 있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고 합니다. 

 

이로서 원종이 원나라 쿠빌라이 칸에게 결혼 서약서를 보낸게 1270년 2월에 보내고 1274년 5

 

월에 드디어 혼인이 성사됩니다.

 

고려와 몽골에 첫 국제 결혼입니다.

 

 

 

 

 

제국대장공주가 충렬왕과 결혼을 하자마자 서열이 1위로 바로 올라가고 기존있던 정화궁주가

 

별궁으로 밀려 납니다.

 

제국대장공주는 결혼을 하고 남자아이를 낳는데 바로 태자(충선왕)가 되는 서열까지 정해집니

 

다. 그 당시 원나라세력이 고려에게 얼마나 강했는지 엿 볼 수 있습니다.

 

제국대장공주는 중국 강남지역으로 고려의 물품을 수출을 해 많은 이득을 보고 자기가 총애하

 

는 환관들을 시켜 곡물을 생산한 고려백성들거를 빼앗아 고통을 주웠다고 합니다.

 

그 당시 백성을 생각하지 않고 사치와 향락을 즐겼다는 것을 추측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제국대장공주는 사찰의 금탑을 궁내로 이동도 시켜 절대권력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충렬왕은 그런 제국대장공주에게 제대로 답변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제국대장공주는 충렬왕에게 매질도 했다고 합니다.

 

절대권력을 한번 더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충렬왕은 매년 원나라에게 공납하는게  중요한 물품 중 하나는 매였다고 합니다.

 

중요한 물품인거 만큼 충렬왕은 매 사냥도 주도 했다고 합니다.

 

매 사냥을 하는 응방이라는 조직은 충렬왕 본인이 신뢰를 하는 사람들에게 맞겼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원나라 추종만 한게 아니라 은근히 충렬왕은 측근정치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려고

 

합니다. 여기에는 부원세력을 몰아낼려는 의도도 엿보입니다.

 

 

 

 

 

 

 

 

 

 

해당 사진들은 본문에 이해를 돕기 위한 용도이며 모든권리는 해당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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